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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鐵)학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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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산책] 끝까지 내 발로 걷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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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원
2026.06.19 12:03 조회 45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만 인생이라는 말은 젊은 날에는 잘 들리지 않는다.

 

20대와 30대에는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른다. 40대와 50대에는 산길을 오르며 아직 몸이 괜찮다고 믿는다. 거래처를 돌고, 창고를 확인하고, 제철소 출하 일정을 맞추고, 야적장 사이를 걸어 다니는 일이 일상이던 사람에게 걷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70대를 넘어서면 세상은 갑자기 낮아지고 좁아진다. 화장실에 가는 일, 현관문을 여는 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조차 하루의 협상이 된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작은 문턱이 산처럼 느껴지고, 젊은 날 무심히 올랐던 계단은 낯선 고개가 된다.

 

 

철강 유통인의 삶도 이와 닮아 있다. 젊을 때는 더 많이 팔고, 더 멀리 뛰고, 더 큰 거래를 잡는 것이 전부처럼 보인다. 열연 대강 한 코일이라도 더 확보하려 하고, 철근 한 차라도 더 빨리 출고하려 하며, 후판 단가 몇 천 원을 두고 밤늦게까지 전화기를 붙들고 산다. 그때 건강은 늘 뒤로 밀린다. “이번 달만 넘기면 쉰다”, “이번 계약만 끝내면 운동한다”고 말하지만, 시장은 한 번도 우리에게 충분히 쉴 시간을 내어 준 적이 없다.

 

 

문제는 몸이 한 번 무너지면 장부도, 창고도, 거래처도 대신 걸어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돈이 많아도 스스로 양말을 신지 못하면 하루는 이미 절반쯤 남의 손에 맡겨진다. 간병인을 둘 수 있어도 내 발로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욕구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누구나 늙지만,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늙지는 않는다. 노년의 품위는 결국 근육과 균형감각, 그리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 위에 놓인다.

 

 

한 철강 유통업체 원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젊을 때는 재고가 자산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니 허벅지가 진짜 재고더라.” 투박하지만 맞는 말이다. 창고에 쌓인 철근과 형강은 팔면 사라지지만, 꾸준히 쌓아둔 근력은 노년의 자유로 돌아온다. 50대에 만든 근육은 70대의 자존심이 되고, 60대에 지켜낸 유연성은 80대의 이동권이 된다.

 

 

노년의 행복은 생각보다 크고 화려한 곳에 있지 않다.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 물을 끓이고, 커피 한 잔을 내릴 수 있는 것. 집 앞 공원까지 걸어가 벤치에 앉을 수 있는 것.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갈 수 있는 것. 손자의 얼굴을 보러 버스에 오를 수 있는 것. 이런 평범한 일상이 가능할 때 노년은 여전히 삶이다.

 

 

젊은 날 우리는 성취, 돈, 평판을 좇아 달렸다. 승진과 연봉, 사회적 지위가 삶의 척도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면 질문이 바뀐다. 얼마나 벌었는가보다 혼자 걸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어느 회사의 명함을 가졌는가보다 오늘 계단을 오를 수 있는가가 더 절실해진다.

 

 

철강도 그렇다. 아무리 단단한 강재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녹이 슨다. 표면의 작은 부식이 어느 날 구조 전체를 약하게 만들듯, 사람의 몸도 작은 방심에서 무너진다. 하루 30분 걷기를 미루는 일, 계단 대신 늘 엘리베이터만 고르는 일, 허벅지와 허리를 쓰지 않는 생활은 조용히 노후의 기초를 갉아먹는다.

 

 

명품 가방 하나를 사는 것보다 매일 걷는 습관 하나가 더 오래 남는다. 은퇴자금을 모으는 일만큼 스쿼트 10개를 할 수 있는 다리 근육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통장 잔고가 노후의 방패라면, 근육은 노후의 바퀴다. 방패만 있고 바퀴가 없으면 멀리 갈 수 없다.

 

 

자가용은 편리하다. 그러나 지하철은 사람을 걷게 한다. 역까지 걸어가고, 계단을 오르고, 손잡이를 잡고 균형을 잡게 한다. 그 작은 불편이 몸을 깨운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친 편리함은 축복이 아니라 함정이 될 때가 있다. 조금 불편하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오래 자유롭게 산다.

 

 

인생의 마지막 10년, 20년은 어느 날 갑자기 결정되지 않는다. 오늘 아침 내가 몸을 어떻게 대했는가, 오늘 저녁 내가 걷기를 포기했는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움직였는가가 훗날의 나를 만든다. 몸은 정직하다. 방치한 만큼 약해지고, 돌본 만큼 버틴다. 근육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래서 단순한 건강 구호가 아니라 노년의 경제학이자 존엄의 철학이다.

 

 

끝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쓰일지도 모른다.

“나는 끝까지 내 발로 걸었다.”

 

 

그보다 더 조용하고 품위 있는 성공이 또 있을까. 철은 불 속에서 단단해지고, 사람은 매일의 걸음 속에서 늙어갈 힘을 얻는다. 오늘도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는 일, 엘리베이터 앞에서 계단을 한 번 바라보는 일, 그것이 노년을 향한 가장 현실적인 준비다.

 

 

그래서 나는 자가용보다 지하철을 즐긴다. 그것은 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의 연습이다. 내 발로 걷는 동안, 인생은 아직 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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